14 동구史색

어버이를 향한 효심 하늘에 닿아 동구의 효행 설화


어버이를 향한 효심 하늘에 닿아
동구의 효행 설화



지극한 효성이 하늘을 감동시켰다. 특산물 사과로도 잘 알려진 평광동 마을 앞 도로변에 세워진 ‘효자 강순항 정려각’은 조선 후기 강순항선생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50여 년 동안 부모를 극진하게 섬긴 효자 강순항. 강순항의 아버지는 여러 해 병석에 누워있어 그의 시름이 깊었다. 어느 해 겨울, 참외가 먹고 싶다는 아버지를 위해 집 밖으로 나가 참외 덩굴을 찾아내 참외를 가져다드렸고, 더운 여름에는 멀리 장터에 가서 장작을 팔아 쇠고기를 사왔다. 이듬해 겨울에는 잉어를 찾는 아버지의 청에 추운 바람을 헤치고 강으로 향해 얼음을 깨고 잉어를 찾는 고생을 피하지 않았다. 돌아가신 후에는 산소 옆에 움막을 짓고 3년상을 치렀다. 강순항의 효행이 알려지자 1816년 경상도 관찰사의 건의로 정려현판이 내려졌고, 1830년 숭정대부 행동지중추부사에 임명됐다. 정려각은 강순항의 아들이 건립한 것으로, 2000년 2월 29일 대구광역시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됐다. 효자 강순항 정려각은 조선 후기 성리학 이념이 확산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윗사람을 존경하고 부모를 섬기는 조선시대 동구의 충효정신이 이곳에 녹아있는 것이다.


또 다른 동구의 효심은 백원서원에 담겨있다. 효자로 이름난 서시립 선생을 기려 1692년 백안동에 세워졌던 백원서원은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22년 현재 위치인 도동 측백수림 인근에 복원됐다. 서시립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에 참가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대신해 15살의 나이로 할머니, 어머니를 모시고 팔공산으로 피난을 오게 된다. 임진왜란 후 연로하신 부모를 위해 한겨울 야산에서 약초 캐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음식을 씹을 수 없을 정도로 노쇠해진 할머니를 위해선 호리병을 들고 다니며 부인들에게 젖동냥을 받기도 했다. 정유재란 때는 멀리 부산 동래까지 걸어가 음식을 구해오며 효를 다했다. 당시 예조판서 이호민이 광해군 태실의 일로 대구에 왔다가 서시립의 효행을 듣고 감동하여 고기, 꿀 등을 선물했다. 그리고 서시립의 집을 ‘전귀당全歸堂’이라 이름했다. ‘전귀’는 부모로부터 받은 몸을 잘 유지하였다가 죽을 때 온전(全)하게 돌려(歸)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서시립이 죽자 조정에서는 그를 큰 효자로 인정해 정려를 내렸고, 선비들은 1692년 백원서원을 건립, 그의 뜻을 후대에 전하고자 했다. 지극한 효심을 가진 동구 명인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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